Posted On Apr 21, 2025

단편 여덟 편을 묶은 220 pages 단편집인데, 제목 “일인칭 단수”는 맨 마지막에 있다. 작가는 개인적 기억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가 1949년생이니 이제 76세, 살아온 날만큼 숱한 삶의 정리되지 않은(못한) 기억들이 머릿속 여기저기에 수많은 조각들로 산재해 있을 것이다. 마치, 내게 완전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또는 젊은 시절 짧은 기억의 편린들이 느닷없이 순서도 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여섯 번째 단편인 “사육제(Carnival)”는 못생겼지만(?) 매력있다고 할 수 있는(?) 여자, Classical 음악, 사기꾼에 관한 기억을 얘기하는데, 그 중 한 문장을 인용하면;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느닷없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내 기억의 조각들이 이와 같이 나를 뒤흔들어 놓은 경우는 없었지만 어떤 것들은 느닷없는 만큼이나 오래 머물며 새로운 살을 보태기도 한다.

Haruki Murakami의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장편소설보다는 이런 단편이나 수필집이 더 와닿는다. 오랫동안 – 영원히라고 하는 것은 너무 길어서 - 채워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적당한 외로움이 더해진 늦은 가을 저녁을 걷는 듯하기도 하고…